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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상상식

한식날의 유래와 개자추 전설

한식날의 유래와 개자추 전설

 

한식날은 동짓날로부터 105일째 날, 석 달 보름 후다,

따라서 대개 44,5일 경이 되는데 금년은 46일이다.

이때쯤은 24절기의 하나인 청명(淸明)과 겹치기도 하는데, 금년의 청명은 4월 5일이다.

 

한식날은 조상의 묘를 찾아 살피고, 더운 음식을 삼가고 찬 음식을 먹어야 한하는 풍속이 있다.

 

한식의 유래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 소사에 이날은 비바람이 심하기 때문에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유래했고,

다른 하나는 개자추에 관한 설이다.

 

지금도 봄철이면 건조해서 산불이 심한 만큼 첫 번째 설도 설득력이 있고,

두 번째 개자추에 관한 설은 매우 감동적이 이야기라 많이 회자되고 있다.

 

 

개자추에 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춘추시대 진() 나라의 문공은 왕이 되기 전에 아버지인 헌공이 자신을 해하려 해 망명을 하게 된다.

문공은 여러 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갖은 고생을 꺾는다.

하루는 굶주린 문공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이에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바쳐다.

 

무려 19년이라는 긴 망명생활을 끝내고(기원전 646) 문공은 왕위에 올랐다.

문공은 왕이 된 후에 그동안 자신을 도왔던 많은 사람들이게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망명 시절에 헌신적이었던 개자추는 어찌 된 일인지 등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늦게 사 문공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개자추를 불렀다.

(일설에는 문공이 처음부터 등용했는데 개자추가 사양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개자추는 문공은 현명한 분이니 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자신이 공을 내세우는 것은 하늘의 공을 탐하는 것과 같아 수치스러운 일이다.“라며,

문공의 불응에 응하지 않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면산(綿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문공이 아무리 불러도 산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개자추가 꿈 적을 않자 문공은 산에 불을 지르게 했다.

개자추가 불을 피해 산에서 나오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버드나무 아래서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었다.

그래서 이 날을 개자추의 혼령을 위로하는 날로 정하여 찬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한다고 한다.

한식날에 비가 내리면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를 물한식이라고 하며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도 술과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며,

조상의 모를 찾아 살피고 봉분을 개수하기도 한다.

이날 성묘하는 풍습은 신라 때부터 전해져오고,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였다고 한다.

한식날이 되면 농가에서는 채소 씨앗을 뿌리는 등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된다.